카를 폰 키르히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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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라우터바흐의 카를 폰 키르히바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인이다.
2. 생애[편집]
11세의 나이에 장크트푈텐에 있는 사관학교에서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키르히바흐는 테레지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장교에 복무하였다. 중장까지 진급한 키르히바흐는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측근 중 한명이었다. 1914년 5월 1일, 기병대장으로 진급하였다. 얼마 안 가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는데, 키르히바흐는 제1군단을 지휘하며 수송부대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크라슈니크 전투에서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고, 고를리체-타르노프 공세에서도 활약을 하였다.
1916년 5월 그의 군단은 제3군 소속으로 뒤이은 남티롤 공세에 참여하기 위해 남티롤 전선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한달 동안 공세는 지지부진 했으며, 제3군의 마지막 공격 시도가 좌절되어 공세는 중단되었다. 그 후 키르히바흐의 군단은 다시 동부 전선으로 이동하였다. 카를 폰 플란처발틴의 후임으로 제7군사령관이 되어 브루실로프 공세 당시 카르파티아 능선에서 성공적인 작전을 통해 러시아군이 돌파하는 것을 막았다. 10월 20일, 키르히바흐는 쾨베스 장군과 지휘권을 교체하고 제3군을 지휘했다. 이후 키르히바흐는 1916년 11월 1일에 상급대장으로로 진급했다.
1917년 3월 5일 그는 제4군의 사령관이 되었으나 건강 문제로 잠시 자리를 떠나야했고, 1917년 10월 다시 현역으로 복귀했지만 아직 병이 완치되지 않았다. 병은 쉽게 낫질 않았고 1918년 4월 1일 퇴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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